평범한 소재의 비범한 감수성이 돋보인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다고 할 정도의 제목과 소재로도, 이토록 사람을 몰입시키는 드라마라니. 놀라웠다.

흔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상과 대사의 설득력이, 경이롭다. 오글거림을 예상했는데, 허를 찔렸다.

Normal People. 노멀 피플. 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적으면 딱히 이야기라고 할 것이 없다. 뭔가 극적인 사건이나 놀라운 반전이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있다. 그저 순탄하게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잘먹고 잘살았다는 물론 아니다. 갈등은 이야기의 핵심이자 추진력이다.

시작부터 갈등은 명백하게 예정되어 있다. 가난한 집의 아들, 부잣집 딸. 외향적인 남자. 내향적인 여자. 인기남, 왕따녀. 삼각 관계.

이런 차이에도 둘의 연결점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감정선을 이어간다. 오르락내리락 연애 선을 그린다.

둘 다 독서광이다. 남자 운동선수라고 뭐 책 많이 읽지 않는다는 건 편견이겠지. 어쨌거나 이 지점에서 상상력이 촉발된다.

흔히들 독서광이면 내성적이고 따분한 사람으로 여기기 쉬운데, 그들의 머릿속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활동적이다 못해 활화산 같다.

두 사람이 독서광이라는 설정 때문에, 두 남녀의 대사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용인하게 된다. 왜 이 원작소설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독서다. 고립을 이겨내는 방식 또한 독서다.

운동을 포기하고 대학에셔 영문학을 전공하는 남자는, 물론 학업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계속 혼자서 책을 읽는다.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과 그리 잘 어울려 지내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사랑했던, 그 왕따녀처럼.

대학교에서 남녀 주인공은 완전히 뒤바뀐다. 인기녀가 된 마리엔을 본 코널. 애증으로 끓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정확히는 의도된 대사에 가깝다.)는 긴장과 감정이 강렬하게 흐른다.

이야기는 종이책 읽듯 단정하고 차분하게 한 장 한 장 흘러간다. 지루하게 평범한 일상처럼 진행된다.

어느 순간, 시즌1 5화, 이야기는 두 남녀의 사랑에서 인간의 진실한 혹은 가식적인 내면과 위선적인 혹은 사회적인 외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어, 저기요. 심리학 논문을 여기서 쓰시면 곤란하죠.

이야기는 다시 두 사람의 사랑으로 초점을 맞춰 되돌아간다. 당겼다 밀었다. 밀었다 당긴다. 좋아했다 싫어했다. 사랑했다 미워했다. 좋아 죽을 것 같더니 싫어서 미치겠다. 헤어졌다 만났다. 만났다 헤어진다. 시즌2에서 다시 만나겠지 뭐.

현실적인 문제들. 먹고살아야 함. 돈. 특히, 남자 코널한테. 가족 내 불화. 여자 마리엔한테. 여기에 거시기 취향 문제까지. 이건 살짝 문화 충격. 심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웹소설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이제 알겠다. 현실적인 문제. 이런 거 보고 싶지 않은 거다. 소위 고구마는 사양이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혹은 해석하기로는, 진심의 문제다. 이 진심의 사랑을 위해, 방황한다.

둘이 서로 사랑한다고, 주변의 문제들과 고통과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게 보통 사람들의 삶, 사랑, 이야기다. 아, 그래서 제목이 노멀 피플이구나.

로맨스 장르에서 왜 그런 클리셰를 반복하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심리 드라마다. 그리고 역시나 어쩔 수 없이 클리셰로 돌아선다. 가난한 남자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남주가 실퍠한 작가로 살아가면 이상하잖아. 그건 이야기가 아니지.

전반적으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다크 버전이랄까. 후반부를 못 견디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대게 현실도피로 보기 때문에.

Posted by 빅보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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