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실험 블라인드러브 시즌1 시즌2 일본 브라질 - 결혼 혹은 연애의 조건 (스포 약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최대한 줄이려고는 했습니다.

리얼리티 TV쇼는 즐겨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연애실험 블라인드버브'를 무척 흥미롭게 봤습니다.

데이트 짝직기 프로그램이야 뭐든 흥미롭게 볼 수야 있겠지만, '연애실험 블라인드러브'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심리과학 실험의 호기심에서라도 이 TV쇼를 보게 되더군요.

상대방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오직 상대가 하는 말과 그 목소리로만 상대를 판단해야 합니다. 연애에 집중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휴대폰과 SNS는 금지시켰습니다. 연애실험 기간 동안은 외부와 접속을 차단시킵니다.

연애 결혼 TV쇼에 출연하는 이들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공감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유명세를 얻으려고 출연하는 이도 있고 제작사의 지시에 따라 연기하는 사람도 있고 언제나 밉상이 등장하기 마련이었죠.

이 프로그램 '연애실험 블라인드버브'도 그런 면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아주 적거나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좋아할/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반드시 한 명이 이상 등장합니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고 저란 사람도 있구나 정도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연애는 상대의 깊은 속마음을 알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예전에도 사람 마음을 알기는 쉽지 않았지만, 겉모습(주로 여자)과 사회적 지위(주로 남자)에 너무 몰두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주로 판단 근거로 해서 상대와 연애 혹은 결혼했는데 실망해서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거죠. 출연자들이 참여 동기를 말하는 장면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이 연애실험은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조성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상대의 외모를 알 수 없고 주변 잡음이나 간섭이 없는 상태로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는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와 잊히지 않는 아픔마저도 밝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참여자가 꽤 많은 편이었습니다. 브라질 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대의 모습을 알 수 없는 데이트 코스(상대방을 볼 수 없고 상대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데, 일본편의 경우 물건, 그러니까 편지, 책, 꽃 같은 것을 상대방한테 전할 수는 있었음.)에서 말은 무척 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말을 잘하는, 혹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죠. 일본편에서 코미디언이 압승을 거두는 것을 보면 명백합니다. 미국편도 예외는 아니었고요. 말빨이 끝판왕입니다. 나중에 실제로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죠.

출연자 대부분은 대체로 진실하게 말하는 편이었습니다. 출연자들의 참여 의사가 대체로 진심이기 때문이죠. 이들 대부분이 소위 소울메이트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한 번 즐기는 연애 상대가 아니라요. 그런 연애 질렸거나 실망한 사람들이었죠. 중매나 소개팅은 철저히 상대방의 스펙 위주입니다. 나이, 직업, 학력, 출신지, 재정 상태, 외모 등.

일본편의 한 남자는 계속 거짓말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했다가 들통이 나고 맙니다. 외모도 그러싸해서 저도 속았습니다. 속은 여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겠지만, 그런 거짓말에 속은 이유도 여자쪽에 어느 정도는 있어 보이더군요. 남자의 재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경우, 그래서 상대가 대단히 부자라고 착각해서 연애 혹은 결혼하는 경우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긴 했는데 막상 TV쇼 화면으로 보니까 기분이 묘하더군요. 여자는 지력과 재력과 미모가 모두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합니다. 나중엔 들통이 났고요. 다행이죠.

그럼에도 연애는, 특히 결혼은 외적 조건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방 모습을 알 수 없는 상태에도 그 외적 조건을 물어 보는 이가 많았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라도 직장, 나이 정도는 물어 봤을 겁니다. 키는 좀 그렇고. 일본편에서는 문신 여부를 중시하더군요. 문신 자체보다는 그게 있는지 없는지를 솔직하게 말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했고요.

의외로 학력과 재력은 큰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미국편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경제적으로 어려움 상태임을 알았어도 결혼하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여자는 딱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학자금으로 빌린 돈은 많았지만 남자측에서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혼, 혹은 행복의 조건에 부유하게 사는 것이 필수는 아닌 것이죠. 결혼 이후 후일담을 보니까 여자는 일을 해서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남자는 살던 집을 팔아서 아내의 학자금을 갚았더군요. 상대를 사랑하면 자신을 바꾸는 데 적극적이 되는 모양입니다.

 

미국편도 일본편도 상대방한테 성적으로 끌리는지 고민했습니다. 미국편에서는 결국 다들 포기하지만 일본편에서는 결혼하더군요. 일본편도 포기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일본편의 경우 두 남녀와 조건상으로는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소위 중매 사이트 데이터 상으로는 완벽 일치였습니다. 여자 측에선 남자의 외모에 다소 실망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상대의 모습을 알 수 없었던 상태에서 상상이 지나치게 기대치를 높인 탓인 듯. 여자는 여전히 남자한테 성적으로 크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고민도 했고요. 엄마는 딸한테 넌 너무 이기적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여자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자가 결혼한 이유는 남자의 태도 때문일 거라 짐작됩니다. 남자는 여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같이 운동하더군요.

그러니까 엄밀하게 따지만, 상대의 외모나 성적 매력조차도 경우에 따라서는 결혼의 조건으로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 반응, 행동인 것이죠.

가난해서 결혼 못한다?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벌면 됩니다. 뚱뚱해서 결혼 못한다? 운동하세요.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상대도 나를 사랑하면 못할 게 없습니다. 일본편에서 죽어도 머리색 안 바꾸겠던 남자가 여자측 보수적인 부모님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는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해서 나왔습니다. 절대 안 한다고요? 그건 사랑에 빠지기 전 생각일 뿐입니다.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조건은 종교, 나이였습니다. 특히 종교는 넘사벽입니다. 나이는 종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사지 본인은 나이 차이를 엄청 중시하고 걱정하는데 주변 지인들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더군요. 아, 물론 20대랑 50대 이런 식은 아니었고요. 10~20살 차이 정도였습니다.

아, 남자 키도 경우에 따라서는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미국편의 여자 몇 명은 특히 그랬습니다. 여자 키는 그다지 문제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대체로 남자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여자를 선호했습니다. 저의 경우, 키가 큰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부담스럽니다. 특히 키가 크면서 미인인 경우, 내가 너무 밀린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주눅이 들죠. 미인이면서 나보다 키가 작은 경우는 호감이 가지만 주눅이 들진 않습니다. 다른 남자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키는 개인 선호 사항이라서 어쩔 수 없는 듯.


속성 연애 결혼 코스란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었습니다. 대개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는 것은 신중하지도 합리적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처사라는 거죠.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질질 끄는 연애는 답답하기도 하고 결혼만은 절대 안 하려는 사람도 있다보니, 그런 단점을 피할 수 있어 좋죠.

맞선, 소개팅해 본 경험을 돌이켜 보니 저 역시 너무 여자의 외모를 중시하지 않았나 싶더군요. 외모는 딱히 끌리지 않아서 포기한 경우가 많았거든요. 대개들 여자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예의상 하는 말이 "성격 좋다, 착하다."인데요. 그러니까 진짜 하는 말은 "못생겼어."인 거죠.

저의 경우 정말 "착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청혼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착한 여자 분이었습니다. 이런 여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못생겼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절대 미인은 아니었거든요. 시간 지나서 냉정해진 후에야, 말 그대로 '착한' 사람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은, 짧든 길든 필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기간 정도의 동거를 아주 좋은 실험 방법일 수 있습니다. 동거만 하고 죽을 때까지도 결혼은 안 한 사람도 있지만 대단히 드물죠. 아, 사르트르요.

통계학적으로 사랑을 어느 정도 좁혀서 정의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본인이 중시했던 조건들조차 사랑 앞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무너집니다. 신기하죠.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미국편의 경우 인종 특히 백인 흑인간의 결혼은 걸림돌이 되는 편이었습니다. TV쇼에서는 백인 남자가 이미 흑인 여자와 연애한 경험이 있는 상태였고 흑인 여자 측 아버지가 꽤 보수적이었지만 백인 남자의 성격을 좋게 평가해서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외적인 경우죠. 일반적으로 인종은 연애 혹은 결혼의 중대한 조건입니다.

 

쇼에서는 인도계 남녀가 같은 인종과는 연애조차 안 하고 백인을 주로 만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인도계 미국인 2세의 경우 1세대와 달리 같은 인종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보이네요.

 

미국인이면 성에 대해서 다들 개방적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에 대단히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 전 순결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지 않지만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반응이 천연기념물 봤다는 식이죠. ㅎㅎ

 

일본편의 경우 한국인 피가 섞인 여부기 중시되었습니다. 때마침 반은 한국인이 피가 반이 섞인 일본인 여자와 재일한국인 부모를 둔 일본인 남자가 만나서 서로 반가워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격 차이. 이건 쇼에선 대체로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일본편에서 머리카락 떨어져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여자가 나왔는데, 남자 측에서는 사랑하니까 여자 측에 맞춰 주다가 나중에는 결국 포기하더군요.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고.

 

흥미로운 점은 비슷한 성격이라서 잘 맞지만 결혼까지 가지는 않더군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는 조심해야겠지만요. '최후통첩 결혼할까 헤어질까'에서는 정말이지 두 사람이 너무 잘 맞았서 주변 사람들이 왜 적극적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지 의아해 하는 커플이 있었습니다. 촬영에서 의례적인 몇몇 키스 정도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시청자와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 어떤 육체적 결합이나 강렬한 감정은 없었다고 하네요. 이성이지만 말 그대로 계속 친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로 있을 수 있군요.

 

국적. 이 실험에서는 같은 나라 사람들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람 사람끼리의 사랑 실험은 없습니다.

 

언어. 일본편에서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끼리 더 친해지는 경향을 볼 수 있었지만 결혼의 절대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외모. 미국편과 브라질편에서는 못 느꼈는데, 못생긴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까, 일본편에서는 확실히 봤습니다. 상대의 외모를 볼 수 없는 상황임에도,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감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더군요.

 

나이. 30대 정도만 되도 현실적인 조건을 상당히 따지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여자는 무척 이성적이었네요. 감정적인 면, 성적인 면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절대로 현실적인 면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청혼은 남자가? 대체로 남자가 청혼하는 식이었지만 여자가 청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드물지만 있습니다. 미국편, 일본편, 브라질편 모두에서 한 명 이상씩 여자가 먼저 청혼했습니다.

 

브라질 편에서는 사소한 것을 보여줍니다.

 

배우자의 흡연. 음주. 배우자의 개.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생활습관. 지나친 자기 주장. 특히, 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쳐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그 주장을 계속 반복합니다. 요란하고 문어발식 연애사. 자신의 직업/일/꿈을 무시하거나 존중해 주지 않는 태도. 이 마지막은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쨌거나 여기 나열한 문제는 두 사람이 결혼하는 데는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혼 경력 자녀 여부. 일본편에도 이 문제는 나왔는데,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브라질 편에서도 고려할 사항이긴 했으나 별 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람둥이 연애 문제가 더 심각했습니다. 미국편과 브라질 편에서는요.

 

결혼은 결혼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도 그렇고요. 결혼과 육아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대체로 결혼과 육아에서 행복과 안정감과 충만함을 느끼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하지만 결혼은 서로에 대해서 참거나 화를 내야 할 일이 많아지면 지옥이 됩니다. 육아도 마찬가지고요.

Posted by 호랭이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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