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BBC는 자기 나라의 문학 유산을 영상으로 꾸준히 잘 만들어내는 국영 방송국입니다.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탁월하게 잘 만듭니다. 이미 셜록에서 이 사람들의 제작 솜씨를 봤죠. 오만과 편견도 유명하죠.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BBC에서 만든 푸아로 혹은 미스 마플 드라마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상상이 안 되는군요. 아직 안 보셨다면 복 받으셨네요. 천천히 한 편씩 보세요. 당분간 심심할 일은 전혀 없겠군요. 부럽습니다.
자, 그리고 여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이자 추리소설의 절대적 고전이자 전설이 되어 버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가 BBC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워낙들 많이 가져다 써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매번 관객을 경악시킵니다. 원작 그대로 하든 원작을 변형해서 쓰든, 결과는 언제나 놀라움이죠.
원작을 이미 읽었고 범인이 누군지 아는 분이라면 그리 놀랍진 않겠죠. 그런데 책을 읽은 지 오래되면 다시 범인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납니다. 진심입니다. 농담 아닙니다. 아쉽게도, 저는 읽은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 범인은 물론이고 그 수법도 어느 정도 알고 봤습니다. 심심하네.
다음과 네이버의 인기 검색어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범인'이 있을 지경이니, 난리도 아닌 거죠.
설정은 간단합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섬에 갇힙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살해당합니다. 범인은 분명히 섬에 갇힌 사람들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살해당하고 섬에는 아무도 남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됩니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자에게 죽음을 내린다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추리소설의 재미인 누가 왜 누가를 어떻게 죽였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그 해결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범죄소설 트릭과 플롯의 거장입니다. 일단 한 번 이 소설가의 트릭 함정에 빠지면 이야기 끝에서 반전과 수수께끼 해결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죠.
일단, 보니까 원작을 많이 보전하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원작의 시대나 장소를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도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타윈 라니스터를 연기했던 찰스 댄스가 이 드라마에서 워그레이브 로렌스 판사로 나옵니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미네르바 맥고나걸 교수 역을 했던 매기 스미스가 잠깐 나옵니다.
초반이 지루하네요. 각 사람들의 죄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약간 고조되고 한 사람씩 죽어 나가면서 서로 의심하고 과연 누가 범인인지 각자들 추리하며 점점 좁혀갑니다.
지금 보니까, 범인이 너무 뻔히 보이네요. 이 사람 외에는 범인을 만들 수가 없어요. 이야기에 빠져 있을 때는 전혀 누군지 몰랐지만요. 이래서 이 영드를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기 곤란한 상황이네요.
결론은, 기대보다 별로였습니다. 너무 무난하게 만들었네요. 긴박감이 떨어져요. 진행이 느려요. 차라리 1945년작 90분짜리 미국 흑백 영화가 더 나았네요. 아무래도 극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이 영드는 3부작으로 각 부가 50분 안팎이니 전체가 150분이고 2시간 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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